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철학자 크세노폰이 말하는 소크라테스

by 성데렐라 2022. 2. 23.

안녕하세요 성데렐라입니다.

오늘은 크세노폰의 시선으로 본 소크라테스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크세노폰은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인이며, 소크라테스와 직접 대화를 나누며 친밀한 관계를 맺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크세노폰의 증언에서 드러나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증언에서 드러나는 소크라테스는 그 성격이 꽤 다릅니다.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를 검소하고 열정적인 교육자라고 소개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이 이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좋은 삶을 누리기 위한 역량에 초점을 맞춰 그들을 훈련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좋은 삶은 경제적으로는 풍요롭고 사회적으로는 명예를 얻는 삶이었습니다. 비록 소크라테스가 직접 정치에 몸담지 않았으나, 청년들에게는 정치적 훈련을 시켰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이 공동체를 수호하고 헌신하며 개인적으로도 풍요롭고 명예로운 삶을 살기 위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늘 강조함과 동시에 신체의 단련까지 중시했습니다.

 

플라톤vs크세노폰

19세기 철학자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가 문제를 제기를 한 이래로 많은 철학자와 해석가들은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에 의혹을 품었습니다. 슐라이어마허는 크세노폰이 철학자라기보다 군인이나 정치가에 가까웠다는 점을 들어 그의 저술이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입장을 충실히 반영하기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무기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걸출한 무기 전문가의 생각을 충실하게 전달하기에 무리가 있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결정적으로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는 전통적인 가치를 옹호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반체제적인 인물로 유죄 판결을 받아 죽음에 이른 사실과는 상당히 대조적입니다. 크세노폰의 글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돈을 벌어 가정을 꾸리고 유지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만 그런 사람이 어떻게 아테네의 수많은 청년과 길거리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청년들의 정신을 타락하게 하여 사회의 근간을 흔들리게 했다는 이유로 아테네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슐라이어마허를 비롯한 해석가들은 크세노폰이 소크라테스를 변호하려는 마음이 지나쳤기 때문에 실제와 기록 사이에 틈이 생긴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가 사형 선고를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 했고, 소크라테스를 변호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그의 행보를 왜곡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기존 체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 열중했던 특징, 곧 도발적이고 혁신적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을 간과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대부분 철학자들은 크세노폰의 기록보다 플라톤의 기록이 소크라테스 철학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철학사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플라톤이 증언한 소크라테스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플라톤의 증언에도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플라톤의 증언 속에 나타난 것이 과연 소크라테스의 철학인지 플라톤의 철학인지를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의 저술은 청년기 / 완숙기 / 후기 등으로 구분되는데 각 시기에 따라 나타나는 소크라테스의 특징이나 비중이 다 다릅니다.

초기 저작 속 소크라테스는 이야기의 주된 중심인물이며, 대화 속에서 매우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맡고 있으며 인간적인 개성도 많이 드러나는 편입니다. 그러나 후기의 저작으로 갈수록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중심인물이라기보다 해설자에 가까운 역할을 맡고, 인간미나 개성 역시 잘 표현되지 않습니다. 후기의 저술 중에는 소크라테스가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게다가 초기에 등장하지 않았던 철학적 아이디어가 어느 시점부터 강력하게 주장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플라톤이 전하는 소크라테스 중에서 실제 소크라테스에 가까운 것은 비교적 초기 저작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이고, 후기 저작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이 본인의 생각을 말하기 위해 내세워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완숙기부터 등장한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플라톤의 철학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적절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