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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가 말하는 소크라테스

by 성데렐라 2022. 2. 24.

안녕하세요 성데렐라입니다.

오늘은 아리스토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선으로 본 소크라테스에 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와 가까운 관계였고, 소크라테스를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플라톤과 크세노폰처럼 소크라테스에게 우호적인 사람이 남긴 기록이라면 객관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동시대인이지만 소크라테스와 가까운 관계는 아니었던 그리스의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소크라테스에게 주목하게 됩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자신의 극 <구름>에서 소크라테스를 전면에 내세웁니다. 극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빚 때문에 채권 가에 시달려 괴로워하던 농부가 그 시달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크라테스의 학교에 다니기로 합니다. 소크라세트싀 학교는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으로 하여금 받아들이게 설득하는 '말의 기술'을 가르쳐주던 곳이었습니다. 농부는 공부가 어려웠고 그래서 자기 대신 아들을 학교에 보냈습니다. 아들은 곧잘 배웠고, 그 결과 채권자에게 빚을 갚지 않아도 좋다는 주장을 정당하게 포장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농부는 채권자에게서 벗어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부터 시작됩니다. 채권자에게 빚을 안 갚아도 된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아들은 이번에는 아버지를 때려도 정당하다고 말하는 등 패륜적인 주장을 하는 데 '말의 기술'을 사용했습니다. 화가 난 농부는 결국 소크라테스의 학교에 불을 지르게 됩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소크라테스를 철저히 조롱거리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그의 극 속에 나타난 소크라테스가 실재 인물을 공정하게 반영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소크라테스는 학교를 따로 설립해 학생들을 받아 가르치지도 않았고, 자신의 주장을 무조건 옳다고 포장하는 말의 기술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말의 기술은 소크라테스가 철학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소피스트의 특징입니다.

 

소피스트란 기원전 5~4세기경 그리스 아테네를 배경으로 활동했던 일련의 지식인 집단입니다. 특정한 사상적인 연관성 때문에 소피스트라 분류된 것은 아니며, 단지 이들 각자가 자신을 소피스트라 주장해 그렇게 불리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들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큰 흐름은 언변으로 상대가 반박하지 못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소크라테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죽고 대략 15년 뒤에 태어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객관적인 증언을 기대하기도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를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 검토했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를 직접 경험했던 동시대인의 진술도 믿지 못하면서, 소크라테스가 죽은 뒤 다른 지역에서 태어나 소크라테스의 고향 아테네에 뒤늦게 진출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더 신뢰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게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증언은 대부분 플라톤이 전하는 소크라테스 이야기에 의존한 평가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그의 증언 역시 충분히 객관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를 말할 때 '철학자' 소크라테스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철학자로서 소크라테스를 논한다면, 그의 생애보다 그가 철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고 평가하는 일이 핵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그 이전의 철학자들과 달리 탐구의 중심에 인간을 두었습니다. 그것이 소크라테스 철학의 철학사적 의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이런저런 특성을 전부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중에서도 인간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특징을 찾고 설정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독특하게도 좋음을 제대로 알면 자연스레 좋은 일을 실천하게 되고, 좋은 삶을 살게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곧 앎이 행동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를 질문만 하고, 대답은 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들이 대신 대답하게 하여 본인은 하나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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