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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대명사 소크라테스

by 성데렐라 2022. 2. 23.

안녕하세요 성데렐라입니다.

오늘은 철학자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소크라테스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합니다.

 

"나는 단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알고 있는데, 그것은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_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누구인가?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도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은 들어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부당한 사형 선고를 피하지 않고 독약을 마신 사람이자,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을 남긴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소크라테스는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라는 말처럼 생각하는 인간을 상징하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저술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언행은 그의 주변인, 동시대인, 그 외에 그를 언급한 다른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실존 인물이지만 그를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그 모습이 조금씩 다르게 전해집니다.

꽤나 이상하고 수상쩍은 선생님인 셈입니다.

 

보통 어떤 일을 맡기기 위해 사람을 찾을 때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능력, 인품, 성과물 등이 그 자리의 자격을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참여한 업무 경력을 살펴보거나 직접 면담을 하기도 하는데, 문제는 소크라테스를 직접 만나볼 수도 없고, 그가 쓴 책을 검토할 수도 없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누구이며 어떤 생각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 다른 사람이 소크라테스에 대해 기록한 자료에 의존해야 합니다.

 

소크라테스에 관한 가장 확실한 사실, 죽음

소크라테스에 관해서는 여러 사람의 기록이 있고, 실재 인물로서 소크라테스에 관한 역사적 사실은 이러한 기록을 교차 대조한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소크라테스에 관해 가장 확실한 기록은 그의 삶보다 그의 죽음에 대한 것입니다.

그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인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원전 431~404년)이 끝난 후 아테네의 법정에 소환되었습니다.

이것이 기원전 399년의 일이었습니다.

철학자 플라톤은 독배를 들 당시 소크라테스의 나이가 70세라고 전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출생연도에 대한 다른 기록에 근거해도 당시 소크라테스가 70세라는 플라톤의 기록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대략 1~2년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소크라테스의 정확한 출생일을 알 수는 없지만, 기원전 468~470년 사이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독약을 마시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당시의 재판 기록에 따르면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기원전 399년 초봄 무렵으로 추정됩니다.

공통적으로 일치하는 기록과 사료에 남은 사실을 나열해보면 소크라테스에 대한 파악이 대략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기록의 공통 조각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소크라테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생생히 그려내기 어렵고, 무엇보다 소크라테스가 어떤 생각을 펼친 철학자였는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왜 지금까지도 철학자의 상징으로 유명한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소크라테스를 알아보기 위해 그에 관한 구체적인 증언을 하나하나 검토해 보려고 합니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

사람들이 아는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대부분 플라톤에 의해 전해진 것입니다.

그가 무엇을 추구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과 그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 공유했는지는 플라톤의 증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플라톤은 청년 시절에 소크라테스와 만나 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인물로, 서양철학에 큰 영향을 미친 위대한 철학자입니다.플라톤이 서양철학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지대했는지, 영국의 철학자 알프레드 화이트헤드는 "2천 년 동안의 서양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 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플라톤은 흔히 소크라테스의 제자라고 소개되기도 하지만 이는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따로 학교를 만들거나, 공식적으로 '선생-학생'의 관계를 맺어 타인을 지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플라톤이 젊은 시절 소크라테스에게 한결같이 표현하는 존경심을 고려하면 플라톤을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표현하는 것도 틀리지는 않습니다. 한편 소크라테스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태도를 고려하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스승-제자'인 동시에 진리를 찾기 위한 대화의 동반자이자 동료라고 생각하는 편이 그들의 관계를 더욱 적절하게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플라톤의 저술은 대게 소크라테스와 소크라테스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반박하러 온 상대방과의 대화로 전개됩니다. 그래서 그의 글들은 [대화편]으로 불립니다. 플라톤은 무려 50여 년간 20여 편 정도의 [대화편]을 저술하였습니다. 동시대인 중 소크라테스에 관한 기록을 가장 많이 남겼고, 그렇게 남겨진 많은 책에서 보이는 소크라테스의 생애와 사건의 진행은 제법 일관적입니다. 이러한 일관성과 저작 내에 드러난 사유의 깊이 덕분에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에 관한 기록은 높은 신뢰도를 확보했습니다. 또한 플라톤 역시 걸출한 철학자인 만큼 그의 증언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가장 잘 계승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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