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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처럼 생각하기 3

by 성데렐라 2022. 3. 2.

안녕하세요 성데렐라입니다.

저번 글과 이어서 소크라테스처럼 생각하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철학적 질문을 통해 우리는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모르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끊임없이 탐구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철학에는 '완성(완료)'이라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철학은 언제나 진행형이며, 그래서 철학적 사고는 언제나 개방적입니다. 철학적 사고방식은 자신의 한계선을 미리 긋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다 아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모르는 사람'으로 남는 것입니다.

 

철학적 생각하기, 하나 : 적당한 곳에서 멈추지 않고 앎을 향해 계속해서 질문합니다.

역방향으로 나아가다 : 근본과 근거 찾기

앎을 향한 한계 없는 질문과 탐구는 철학적 사고방식의 또 다른 특징으로 이어집니다. 적당한 순간 멈추지 않고 확실한 앎을 찾을 때까지 계속 물음을 밀고 나가면, 우리는 평소에 물어볼 일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까지 다시 물어보게 됩니다.

우리가 평소에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은 대게 '자연'이나 '사실' 혹은 '상식'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습니다. "인간이 이러이러한 것은 자연스러운 거야." 라거나 '지금까지 그렇게 해온 것이 사실인 걸 어떡해?" "상식적인 생각과 어긋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어."와 같은 식입니다. 이러한 이름표는 양면으로 제작되었는데, 그 뒷면에는 :원래 그런 거야. 어쩔 수 없잖아."라고 적혀있습니다. 예전에는 혈통에 따라 인간의 귀천과 대우가 나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식이었고, 모두가 그 생각과 행동을 바꿀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였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바꾸는 것보다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게 훨씬 나은 선택지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묻습니다. 그것이 정말 상식일까? 정말 사실일까? 그렇다면 도대체 상식이나 사실은 어떤 것일까?

그리스인은 정말 잘하는 것을 아레테(arete), 곧 탁월함이라고 표현합니다. 망치 등의 연장을 잘 쓰거나, 시를 잘 짓거나, 공동체 운영을 논하는 정치 활동을 잘하거나,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등 모든 영역에서 탁월함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런 탁월함은 학습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인가요? 그러니까 누가 가르쳐주면 배울 수 있는 건지, 아니면 학습으로 배우는건 불가능하지만, 열심히 연마하면 얻을 수 있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천부적인 재능의 문제인지가 궁금합니다.

플라톤의 저서 [메논]에서 메논(menon)은 위처럼 소크라테스에게 탁월함에 대해 묻습니다. 탁월함이 교육 가능한 것인지, 타고난 것인지를 헤아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는 해답으로 나아기기 전에 먼저 논의 대상이 되는 탁월함이 무엇인지를 되묻습니다. 이는 플라톤의 다른 [대화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누군가 다양한 아름다움의 사례를 늘어놓으면 먼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려 했고, 누군가 어떻게 용감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물어보면 용기가 무엇인지부터 검토했습니다. 탁월함에 대한 물음에도 역시 탁월함이 무엇인지부터 검토했습니다.

일반적인 질문은 앞으로 나아가려는(progressive) 특징이 있습니다. 나아가기 위해 다음 발걸음에 대해 묻는 것입니다. 이러저러한 사건이나 물건이 주제가 되면 일단 그것이 존재한다는 부분은 '사실'로서 받아들여집니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나면 이제 주된 관심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잘할 것인가?'에 집중되는데, 우리가 일상에서 던지는 질문이나 소위 '실용적'이라고 여겨지는 학문이 다루는 물음은 주로 그런 종류의 것입니다. 어떻게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어떻게 건강해질 것인지, 어떻게 돈을 잘 불릴 것인지, 어떻게 시험에 합격할 것인지, 어떻게 공간을 활용할 것인지 등 많은 실용적인 물음들은 '어떻게'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철학적 질문은 그 방향이 거꾸로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대개 내가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괜찮은 상대를 찾을 수 있을지 묻곤 합니다. 20세기 미국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에르히 프롬(Erich Fromm)은 이러한 물음보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 먼저임을 짚어줍니다. 먼저 지금까지 사랑이라 믿어왔던 감정이 실은 집착이나 소유욕에 머무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이를 확인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묻는 말로 향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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